링컨의 아버지 토마스 링컨은 1637년 영국에서 이민 온 직공의 후예로 토마스 역시 신발을 만드는 일을 하였습니다. 링컨이 대통령에 선출되었을 때,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상원 의원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부분 높은 학력에 명문 귀족 집안 출신이었던 그들은 신발제조공 집안 출신에다가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링컨 밑에서 일해야 한다는 것이 여간 불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침내 링컨이 대통령에 취임 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링컨이 단상에서 막 입을 열려 할 때, 한 상원 의원이 일어나 링컨을 향해 말했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다니 정말 놀랍소. 그러나 당신의 아버지가 신발제조공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가끔 당신의 아버지가 우리 집에 신발을 만들기 위해 찾아오곤 했소. 이 신발도 바로 당신 아버지가 만든 것이오.”
그런 후, 그는 자기 신발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하지만, 링컨은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키가 훤칠한 링컨의 몸집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러나 그의 눈엔 눈물이 가득 고였습니다. 그것은 부끄러움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링컨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의원님 덕분에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내 아버지의 얼굴이 기억났습니다. 내 아버지는 신발 제조공으로 완벽한 솜씨를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능가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아버지의 위대함을 따라 잡으려 노력할 뿐이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많은 귀족들의 신발을 만드셨습니다. 여기 모이신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 중에는 내 아버지가 만드신 신발을 신으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만약 신발이 불편하다면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기술을 옆에서 보고 배웠기에 조금은 손 봐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내 아버지가 만드신 신발을 최선을 다해 고쳐 드리겠습니다. 물론 제 솜씨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만….”
의회장은 무거운 침묵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주종(主從)의 종속관계로 점철되어 오던 인류 역사를 평등한 관계로 대전환을 일으키게 한 계기가 된 ‘노예해방’을 일궈 낸 힘이 바로 이와 같이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가 자라면서 그의 마음엔 “만인(萬人)은 진리 앞에 평등하다”는 가치관이 자리잡힌 것입니다. 그가 만약 명문가에 태어나 아무 어려움이 없이 자랐다면 그같은 고통의 역사는 더 긴 세월 동안 계속되어 왔을 지도 모릅니다.
내게 닥쳐 온 해(害)에서도 은혜를 발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눈앞의 고통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을 오히려 새싹을 틔우는 밑거름으로 생각하고 달게 받습니다. 그러지 못하면 원망하고 싸우고 하다가 일생을 아깝게 보내고 말지요.
작은 마음이 커서 큰마음이 됩니다. 반면에 작은 병이 커서 큰 병이 되고, 작은 습관을 방치하면 돌이킬 수 없는 나쁜 습관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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