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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피가 섞이지 않은 아이
내 피가 섞이지 않은 아이
도덕교육원2018-07-17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환자가 고통을 호소하자, 의사가 그를 진정시키려고 말을 했습니다.
“출혈이 심해서 수술을 멈출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 당신과 같은 혈액형의 피를 매스컴을 통해 구하고 있습니다. 피만 구하면 곧 수술을 마칠 테니 우리를 믿고 걱정 마세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수술실 밖에서는 연락이 없었습니다. 환자의 의식은 차츰 희미해져 갔습니다. 환자가 숨을 겨우 내쉬며 마른 입술을 움직였습니다.
“살고 싶어요. 살고 싶어요.”
바로 그때 환자와 동일한 혈액을 구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매스컴의 위력이 발효되는 순간이었지요. 다시 수술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혈액으로 수술을 다 마칠 수는 없었지만 우선 급한 대로 환자가 의식불명의 상태로 빠지는 것을 막아 주고 싶었습니다.
잠시 후 연락이 된 건강한 사람이 침대에 누운 채, 수술대 옆으로 옮겨졌습니다. 이 한 사람의 피면 우선 위급한 상황은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팔을 내밀던 건강한 사람이 환자의 얼굴을 주시했습니다. 다음 순간 뜻밖에도 그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저 사람에게는 제 피를 줄 수가 없어요. 저런 사람에게 피를 주려고 찾아온 게 아닙니다.”
환자는 눈물을 흘리며 살려 달라고 마른입을 간신히 움직이며 애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환자의 이름과 얼굴을 다시 한번 확인하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기를 낳지 못하는 당신은 당신의 피가 섞이지 않은 아기를 입양할 수 없다고 했지요. 간곡히 말했지만 아주 단호하게 그랬지요. 다른 사람의 피가 섞인 아기를 결코 사랑할 수 없다고 했지요. 그러면서 지금 당신은 다른 사람의 피를 원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혈관 속에 다른 사람의 피를 받아들일 자리가 있냐고요. 그런 당신에게 내 피를 주지는 않겠어요.”
그는 부모 잃은 아이들을 국내의 가정에 입양시키는 기관에서 자원 봉사자로 일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수술실을 뛰쳐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환자는 자기 옆의 빈 침대를 눈물로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참 안타까운 장면이지요. 부모 잃은 불쌍한 아이를 두말 없이 거두어 키우기만 하였어도 그는 회생할 수 있는 인연이 되었을 텐데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한번 아프게 하면 이렇게 인과를 받게 되지요.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내가 여유가 있을 때는 남의 것과 나의 것을 분명히 가르고 따지려 드는데, 자기가 다급해지면 다른 사람이 나와 한 몸이 되어 온통 도와주기를 바라지요. 죄를 지어 놓고서 마침내 그 죄과를 받으려면 다급해져 믿지도 않던 신을 찾아 매달리는 것과 다를 바 없지요. 그래서 대종사님 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어리석은 사람은 근심과 걱정이 있을 때는 없애기에 노력하지마는 없을 때는 다시 장만하기에 분주하나니, 그러므로 그 생활에 근심과 걱정이 다할 날이 없나니라.”(대종경 요훈품 9장)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복을 짓는 것은 ‘진리 은행’에 저금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선 손해를 보는 듯하지만 그것을 나중에 언젠가는 되찾게 되지요.